스웨덴어 döstädning은 ‘죽음(death)’과 ‘정리(cleaning)’를 뜻해
정리법의 핵심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배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우리는 대개 그것을 너무 늦게 이야기한다. 한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무는 편이다. 실제로 한국의 연명의료 계획 논의를 다룬 연구는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죽음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데 부담을 느껴 왔다고 짚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스웨덴식 유품 정리, 이른바 ‘스웨디시 데스 클리닝’은 낯설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태도로 맞이할 것인가.
스웨덴식 유품 정리는 이름만 들으면 음울해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스웨덴어 döstädning은 ‘죽음(death)’과 ‘정리(cleaning)’를 뜻하며,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이를 “남이 대신 치우기 전에, 스스로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는 일”로 설명한다.
창고, 다락, 현관 수납장처럼 오래 묵은 공간부터 시작하고, 가족과 친구에게 미리 알리고, 필요하면 물건을 가져가게 하며,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나누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버리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떠나보낼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사진, 연애편지, 아이의 그림처럼 남길 기억은 남기되, 쌓여만 있던 물건은 삶을 가볍게 하자는 제안이다.

유품정리(AI 생성 이미지)
이 정리법의 핵심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배려다. 영국 가디언은 이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제스처”라고 표현했다. 물건을 건네는 과정에서 단순히 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이야기와 관계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 가족이 감당해야 할 육체적·정서적 부담을 덜어 주고, 동시에 당사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정리란 끝을 준비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묶는 방식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이 질문을 외면하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혼자 사는 고령자 가구는 213만8천 가구로 전체 고령자 가구의 37.8%였고, 이들 가운데 18.7%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9.2%였고, 통계청은 2025년에 20%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026년 4월 1일 기준 약 329만7천 건에 이르렀다. 늙음과 죽음은 더 이상 몇몇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준비해야 할 현실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선배시민’ 담론은 특별한 울림을 준다. 선배시민은 돌봄의 대상에 머무는 노인이 아니라, 시민권과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권리를 알고 공동체를 돌보는 사람이다. 유해숙·유범상 등이 발전시켜 온 이 개념은 노년을 수동적 생애 말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시기로 다시 정의한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선배시민협회가 실제 활동 영역에 ‘존엄한 죽음 권리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철학에 기대어 보면, 죽음을 준비하는 일 역시 사적인 체념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마지막 시민적 실천으로 읽힌다.
그래서 한국의 선배시민에게 필요한 죽음의 자세는 거창하지 않다. 첫째, 내 물건을 내가 정리하는 일이다. 둘째, 남은 가족이 추측하지 않도록 내 뜻을 미리 말해 두는 일이다. 셋째, 물건만 넘기지 말고 이야기를 함께 넘기는 일이다. 넷째, “나는 돌봄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마지막 순간까지 관계를 정리하고 책임을 나누는 주체로 서는 일이다. 스웨덴식 유품 정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잘 죽는다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라는 점이다.
죽음 앞에서까지 침묵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움켜쥐는 노년보다, 마지막까지 나누고 정리하는 노년이 더 강하다. 선배시민은 오래 산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뜻한다. 이제 한국의 선배시민도 죽음을 두려움의 금기로만 둘 것이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는 또 하나의 시민적 윤리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이 남은 이들을 덜 힘들게 하고, 떠나는 이의 존엄도 지키는 길이다.
협회 회원가입 신청 구글폼 바로가기
선배시민뉴스(부산) = 김경식 기자(bioman92@naver.com)
저작권자ⓒ 의미 있는 연대·선배시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웨덴어 döstädning은 ‘죽음(death)’과 ‘정리(cleaning)’를 뜻해
정리법의 핵심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배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우리는 대개 그것을 너무 늦게 이야기한다. 한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무는 편이다. 실제로 한국의 연명의료 계획 논의를 다룬 연구는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죽음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데 부담을 느껴 왔다고 짚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스웨덴식 유품 정리, 이른바 ‘스웨디시 데스 클리닝’은 낯설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태도로 맞이할 것인가.
스웨덴식 유품 정리는 이름만 들으면 음울해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스웨덴어 döstädning은 ‘죽음(death)’과 ‘정리(cleaning)’를 뜻하며,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이를 “남이 대신 치우기 전에, 스스로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는 일”로 설명한다.
창고, 다락, 현관 수납장처럼 오래 묵은 공간부터 시작하고, 가족과 친구에게 미리 알리고, 필요하면 물건을 가져가게 하며,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나누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버리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떠나보낼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사진, 연애편지, 아이의 그림처럼 남길 기억은 남기되, 쌓여만 있던 물건은 삶을 가볍게 하자는 제안이다.
유품정리(AI 생성 이미지)
이 정리법의 핵심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배려다. 영국 가디언은 이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제스처”라고 표현했다. 물건을 건네는 과정에서 단순히 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이야기와 관계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 가족이 감당해야 할 육체적·정서적 부담을 덜어 주고, 동시에 당사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정리란 끝을 준비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묶는 방식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이 질문을 외면하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혼자 사는 고령자 가구는 213만8천 가구로 전체 고령자 가구의 37.8%였고, 이들 가운데 18.7%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9.2%였고, 통계청은 2025년에 20%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026년 4월 1일 기준 약 329만7천 건에 이르렀다. 늙음과 죽음은 더 이상 몇몇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준비해야 할 현실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선배시민’ 담론은 특별한 울림을 준다. 선배시민은 돌봄의 대상에 머무는 노인이 아니라, 시민권과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권리를 알고 공동체를 돌보는 사람이다. 유해숙·유범상 등이 발전시켜 온 이 개념은 노년을 수동적 생애 말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시기로 다시 정의한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선배시민협회가 실제 활동 영역에 ‘존엄한 죽음 권리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철학에 기대어 보면, 죽음을 준비하는 일 역시 사적인 체념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마지막 시민적 실천으로 읽힌다.
그래서 한국의 선배시민에게 필요한 죽음의 자세는 거창하지 않다. 첫째, 내 물건을 내가 정리하는 일이다. 둘째, 남은 가족이 추측하지 않도록 내 뜻을 미리 말해 두는 일이다. 셋째, 물건만 넘기지 말고 이야기를 함께 넘기는 일이다. 넷째, “나는 돌봄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마지막 순간까지 관계를 정리하고 책임을 나누는 주체로 서는 일이다. 스웨덴식 유품 정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잘 죽는다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라는 점이다.
죽음 앞에서까지 침묵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움켜쥐는 노년보다, 마지막까지 나누고 정리하는 노년이 더 강하다. 선배시민은 오래 산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뜻한다. 이제 한국의 선배시민도 죽음을 두려움의 금기로만 둘 것이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는 또 하나의 시민적 윤리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이 남은 이들을 덜 힘들게 하고, 떠나는 이의 존엄도 지키는 길이다.
선배시민뉴스(부산) = 김경식 기자(bioman92@naver.com)
저작권자ⓒ 의미 있는 연대·선배시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