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시민이 여는 ‘사회관리’의 시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종종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나 돌봄의 객체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등장한 ‘선배시민’이라는 개념은 이 오래된 관념에 균열을 내고 있다. 선배시민이란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당당한 권리 주체로서의 '나이 든 보통사람'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선배시민협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정치 세력화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과연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책 표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답변: 정치적 동물로 산다는 것
2,400년 전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 정의하며, 정치를 단순히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공동체의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결정하는 고귀한 활동으로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노년은 ‘평온한 휴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탁월함(Arete)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실천적 지혜(Phronesis)는 오랜 세월 풍파를 겪으며 축적된 통찰력을 의미하며, 이는 공동체의 올바른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선배시민이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세대 이기주의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혜를 공익을 위해 쏟아붓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과정인 것이다.
‘은발의 표범’들이 보여준 세대 연대의 정치
이러한 정치 세력화의 선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매기 쿤이 주도한 ‘은발의 표범당(Gray Panthers)’과 이를 계승한 독일의 ‘회색 팬더(Die Grauen)’는 고령자의 정치가 결코 정적인 복지 요구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들은 노인 차별 철폐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 평화 운동 등 사회 전체의 정의를 부르짖었다. 이들의 활동은 고령층의 조직된 목소리가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하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사회적 어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례관리’를 넘어 ‘사회관리’로: 정치 세력화의 진정한 목적
선배시민협회가 추구하는 정치 세력화의 종착역은 사회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복지는 결핍된 개인을 찾아내 도움을 주는 ‘사례관리(Case Management)’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선배시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공동체의 구조와 환경을 돌보는 ‘사회관리(Social Management)’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배시민들은 제도적 기반을 닦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된 ‘선배시민 지원 조례’는 노인을 복지 수혜자가 아닌 ‘공동체의 선배’로 명문화하는 쾌거를 이뤘다. 의왕시나 대구 남구 등지에서는 선배시민들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연계하여 마을의 위험 요소를 직접 파악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등, ‘사회관리’의 주역으로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아고라에서 발휘되는 선배의 지혜
특히 인공지능과 정보의 홍수가 지배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 선배시민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선배시민은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춘 ‘지혜로운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가짜 뉴스를 선별하는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온라인 광장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갈등을 포용의 언어로 정화하고, 디지털 공간의 분절된 토론을 유기적인 대화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부활한 현대판 ‘실천적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배시민협회 홈페이지 바로 가기
선배시민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
선배시민협회의 정치 세력화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단계를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지자체별 선배시민 대학 내에 ‘디지털 정치 리터러시’ 과정을 필수적으로 개설하여 선배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어 각 지자체 의회 내에 선배시민들로 구성된 상설 위원회나 의회(Council)를 설치하여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직접 반영되는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거권 보장이나 기후 위기 대응처럼 청년과 노인이 함께 직면한 의제를 발굴하여 세대 연대를 이룰 때, 선배시민의 정치는 비로소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결국 선배시민의 정치 참여는 후배 시민들이 겪는 불안의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적 지혜를 빌려 공동체의 이정표를 세우는 숭고한 헌신의 한 형태일 것이다.
정치는 가장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이자, 단 한 사람도 소외되어 불쌍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선배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선배시민뉴스(부산) = 김경식 기자(bioman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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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시민이 여는 ‘사회관리’의 시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종종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나 돌봄의 객체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등장한 ‘선배시민’이라는 개념은 이 오래된 관념에 균열을 내고 있다. 선배시민이란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당당한 권리 주체로서의 '나이 든 보통사람'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선배시민협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정치 세력화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과연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책 표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답변: 정치적 동물로 산다는 것
2,400년 전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 정의하며, 정치를 단순히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공동체의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결정하는 고귀한 활동으로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노년은 ‘평온한 휴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탁월함(Arete)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실천적 지혜(Phronesis)는 오랜 세월 풍파를 겪으며 축적된 통찰력을 의미하며, 이는 공동체의 올바른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선배시민이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세대 이기주의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혜를 공익을 위해 쏟아붓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과정인 것이다.
‘은발의 표범’들이 보여준 세대 연대의 정치
이러한 정치 세력화의 선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매기 쿤이 주도한 ‘은발의 표범당(Gray Panthers)’과 이를 계승한 독일의 ‘회색 팬더(Die Grauen)’는 고령자의 정치가 결코 정적인 복지 요구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들은 노인 차별 철폐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 평화 운동 등 사회 전체의 정의를 부르짖었다. 이들의 활동은 고령층의 조직된 목소리가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하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사회적 어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례관리’를 넘어 ‘사회관리’로: 정치 세력화의 진정한 목적
선배시민협회가 추구하는 정치 세력화의 종착역은 사회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복지는 결핍된 개인을 찾아내 도움을 주는 ‘사례관리(Case Management)’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선배시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공동체의 구조와 환경을 돌보는 ‘사회관리(Social Management)’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배시민들은 제도적 기반을 닦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된 ‘선배시민 지원 조례’는 노인을 복지 수혜자가 아닌 ‘공동체의 선배’로 명문화하는 쾌거를 이뤘다. 의왕시나 대구 남구 등지에서는 선배시민들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연계하여 마을의 위험 요소를 직접 파악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등, ‘사회관리’의 주역으로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아고라에서 발휘되는 선배의 지혜
특히 인공지능과 정보의 홍수가 지배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 선배시민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선배시민은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춘 ‘지혜로운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가짜 뉴스를 선별하는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온라인 광장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갈등을 포용의 언어로 정화하고, 디지털 공간의 분절된 토론을 유기적인 대화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부활한 현대판 ‘실천적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배시민협회 홈페이지 바로 가기
선배시민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
선배시민협회의 정치 세력화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단계를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지자체별 선배시민 대학 내에 ‘디지털 정치 리터러시’ 과정을 필수적으로 개설하여 선배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어 각 지자체 의회 내에 선배시민들로 구성된 상설 위원회나 의회(Council)를 설치하여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직접 반영되는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거권 보장이나 기후 위기 대응처럼 청년과 노인이 함께 직면한 의제를 발굴하여 세대 연대를 이룰 때, 선배시민의 정치는 비로소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결국 선배시민의 정치 참여는 후배 시민들이 겪는 불안의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적 지혜를 빌려 공동체의 이정표를 세우는 숭고한 헌신의 한 형태일 것이다.
정치는 가장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이자, 단 한 사람도 소외되어 불쌍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선배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선배시민뉴스(부산) = 김경식 기자(bioman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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