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세계를 읽고 디지털 공동체를 다시 쓰는 선배시민

김경식
2026-08-31
조회수 220




프레이리의 문해론과 나눔샘 청소년운동, 학습동아리 민주주의 실천 

 


오늘날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행정서비스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옮겨가고, 식당과 병원에 키오스크가 설치되며, 뉴스와 정치 정보가 알고리즘을 통해 전달되는 사회에서 문해력은 시민의 권리와 직접 연결된다.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없다면 복지서비스 신청, 금융거래, 의료정보 확인, 정치적 의사표현과 같은 시민적 권리의 행사도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문해 문제를 개인의 기술 부족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누가 디지털 환경을 설계하고, 누구의 경험이 그 설계에서 배제되며, 기술이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파울루 프레이리의 문해론은 한국의 선배시민운동, 청소년 대상 나눔샘운동, 시민 디지털 문해교육을 연결하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된다.


문자를 읽는 능력에서 세계를 읽는 힘으로

프레이리와 마세도는 『리터러시: 문자를 읽는 것과 세계를 읽는 것』에서 문해를 중립적인 기술로 보지 않았다. 문해는 문자와 단어를 해독하는 능력인 동시에, 그 단어가 놓여 있는 사회적 현실과 권력관계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문자를 읽는 일과 세계를 읽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은 시민은 대화와 실천을 통해 다시 그 세계를 써 나간다.

 

이 관점에서 문해교육은 교사가 정답을 전달하고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될 수 없다. 시민이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타인의 경험과 비교하며, 개인의 어려움을 사회구조와 연결하고,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프레이리에게 문해란 적응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시민이 자신을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 인식하는 실천, 곧 프락시스(praxis)이다.

 

이러한 문해론은 선배시민운동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노인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규정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권리를 가진 시민이자 공동체의 문제를 발견하고 변화시키는 주체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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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시민과 후배시민은 서로에게 세계를 읽는 법을 가르치는 공동의 시민이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은 기기 조작보다 권력 읽기다


유네스코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정보를 안전하고 적절하게 접근·관리·이해·통합·소통·평가·생산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스마트폰 사용법이나 키오스크 조작법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허위·조작 정보를 판별하며,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되는지 이해하고, 디지털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의견과 공동체의 요구를 표현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팽그라지오 역시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가 디지털 정보를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시민은 디지털 콘텐츠와 담론을 직접 생산하고 설계하며, 디지털 환경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프레이리의 언어로 옮기면,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세계를 읽는 능력과 그 세계를 다시 쓰는 능력의 결합이다.

 

예컨대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은 기능적 문해에 해당한다. 그러나 왜 공공기관과 기업이 대면 창구를 축소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시민이 배제되는지, 접근 가능한 기기와 비디지털 선택권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를 질문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비판적·시민적 문해이다.


고령층의 디지털 격차는 ‘접속’보다 ‘역량과 참여’의 문제다

 

한국의 디지털 격차 통계는 선배시민 디지털 문해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 고령층의 종합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을 100으로 했을 때 71.8로 나타났다.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을 포함한 주요 정보취약계층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24년 조사에서도 고령층의 접근 수준은 95.3이었지만 역량 수준은 55.9에 그쳤다. 기기와 인터넷에 접근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그것을 자율적이고 질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여기서 71.8이나 55.9는 고령자의 71.8% 또는 55.9%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 국민의 수준을 100으로 설정한 상대지수다. 이 통계를 정확히 해석해야 고령층을 획일적인 ‘디지털 무능력자’로 대상화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역량이 실제 참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김정호와 강상훈은 2022년 디지털정보격차 조사자료 가운데 만 55세 이상 2,300명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고령자의 정보 생산·공유와 디지털 네트워킹 수준은 평균 이하였으며, 디지털 역량이 이용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정보 생산·공유와 네트워킹이 순차적인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디지털 문해교육이 ‘버튼 누르는 법’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고령자가 지역의 문제를 기록하고, 정보를 생산·공유하며, 이웃과 연결되고, 공론장과 정책 결정에 참여할 때 디지털 역량은 비로소 시민적 역량이 된다.



선배시민운동은 노년을 시민권의 언어로 다시 쓰는 운동이다

 

선배시민운동은 노인을 사회적 부담이나 복지서비스의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선배시민은 먼저 살아온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하고, 후배시민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권리의 주체다. 여기서 ‘선배’는 위계적 지위를 뜻하지 않는다. 먼저 살아온 시민으로서 후배시민과 대화하고 연대할 책임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유미선의 선배시민교육 참여자 연구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확인된다. 참여자들은 선배시민교육을 거치며 ‘권리의 자각과 시민 역할의 인식’, ‘공동체 변화를 위한 실천’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는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 다름을 인정하는 소통, 세대 간 장벽 허물기가 포함됐다.

 

이 연구는 선배시민교육의 의미가 노인의 여가나 자기계발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선배시민교육은 개인의 삶을 공동체의 역사와 연결하고, 노년을 권리와 참여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시민교육이다. 디지털 문해교육 역시 이러한 시민권 교육 안에 배치되어야 한다.

 

선배시민은 디지털 기법을 배우는 학습자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디지털 배제 문제를 조사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시민이다. 예컨대 행정 앱의 복잡한 본인인증, 병원 무인접수기의 작은 글씨,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매장, 온라인으로만 가능한 복지 신청을 조사하여 개선안을 만들 수 있다. 이때 교육의 목표는 선배시민이 불편한 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하고 바꾸도록 하는 데 있다.

나눔샘은 청소년을 ‘미래의 시민’이 아니라 현재의 시민으로 세운다

 

나눔샘은 일반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교육사업이 아니라 아동·청소년을 주요 주체로 하는 나눔 시민교육운동이다. 청소년 대상 워크북 『연민 대신 권리를 나누기로 했다』는 나눔을 불쌍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자선으로만 보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연대의 실천으로 재구성한다. 소비, 노동, 장애, 기후위기, 지역사회 문제 등을 청소년이 자신의 삶과 연결해 토론하고 실천하도록 한다.

 

이 점에서 나눔샘의 청소년은 선배시민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은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사회문제에 의견을 내는 현재의 시민이다. 다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는 사실이 곧 비판적 디지털 문해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김정열은 「2023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의 13∼18세 청소년 2,700명을 분석한 결과, 미디어 리터러시가 사회문제 인식과 유의한 정적 관계를 보였다고 보고했다(&beta=.641, p<.001). 성별·연령·지역 변수의 영향은 유의하지 않았다. 다만 이 결과는 회귀분석에 근거한 관계이므로 미디어 리터러시가 사회문제 인식을 단독으로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보다, 시민성 형성의 중요한 관련 요인으로 해석해야 한다.

 

송미리가 중·고등학생 1,344명을 조사한 연구는 더욱 중요한 주의를 제시한다. 유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배척하는 역량은 정파적 가짜뉴스 판단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단순한 공적 참여는 오히려 부정적인 관계를 보였다. 참여의 양만 늘린다고 민주적 판단력이 자동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눔샘 활동에는 출처 확인, 교차 검증, 알고리즘 편향의 이해, 혐오표현과 확증편향에 대한 성찰이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국제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칸, 리, 피젤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포함한 패널자료를 분석하여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경험이 온라인 정치·시민 참여와 다양한 관점에 대한 노출 증가에 관련된다고 보고했다. 디지털 문해교육이 시민적 쟁점과 결합될 때 청소년의 디지털 활동은 개인적 소비를 넘어 공적 참여로 확장될 수 있다.



선배시민과 나눔샘의 결합은 세대 간 상호교육이어야 한다

 

선배시민운동과 나눔샘을 연결한다고 해서 청소년은 디지털 교사가 되고 노인은 수동적 학습자가 되는 구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은 디지털 문화와 플랫폼 이용 경험을 나눌 수 있고, 선배시민은 사회 변화의 역사, 노동과 복지의 경험, 지역사회의 기억과 제도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양쪽 모두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다.

 

세대 간 디지털 교육의 가능성은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밀러와 동료들은 대학생 27명과 저소득 고령자 18명을 연결하여 8주 동안 디지털 문해교육을 진행했다. 고령자의 디지털 기술과 자신감이 향상됐고, 대학생은 고령자와 함께 활동하는 데 더 큰 편안함을 보였다. 양 세대 모두 관계 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단일집단 사전·사후 연구이고 참여 규모도 작으며 외로움에서는 유의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이를 보편적인 인과효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세대 간 공동학습이 기술 전달과 상호인식의 변화를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세대공동 디지털 문해교육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디지털 사용법을 서로 돕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의 디지털 불평등을 공동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론장과 정책 변화로 연결해야 한다.



학습동아리 민주주의: 학습을 공적 실천으로 연결하는 방법

 

선배시민운동, 나눔샘 청소년운동, 시민 디지털 문해운동을 연결하는 조직적 방법이 ‘학습동아리 민주주의’다. 학습동아리는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해산하는 일회성 교육이 아니다. 시민들이 경험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만들고, 자료를 조사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토론하고, 공동의 행동을 결정하는 작은 공론장이다.

 

라르손은 학습동아리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요소로 동등한 참여, 수평적 관계, 숙의, 판단을 위한 지식, 다양한 정체성의 인정,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사회를 형성하는 행동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학습동아리가 민주적 행동의 조건을 형성하는 데는 기여하지만, 그 자체로 사회·정치적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학습 결과가 시민단체, 지역의회, 행정기관, 학교운영위원회 등 실제 행동의 통로와 연결되지 않으면 학습은 내부 토론에 머물 수 있다.

 

따라서 선배시민과 나눔샘 청소년이 함께하는 디지털 시민문해 학습동아리는 다음과 같은 순환구조를 가져야 한다.

 

첫째, 경험에서 출발한다. 선배시민은 키오스크·행정 앱·온라인 금융에서 겪은 배제를 말하고, 청소년은 알고리즘 추천, 사이버폭력, 개인정보 노출, 생성형 인공지능과 가짜뉴스 경험을 말한다.

 

둘째, 개인의 어려움을 구조적 질문으로 바꾼다. “왜 나는 기계를 못 쓰는가”를 “왜 이 기계는 다양한 시민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는가”로, “왜 청소년은 가짜뉴스를 믿는가”를 “플랫폼은 왜 자극적인 정보를 더 널리 유통하는가”로 전환한다.

 

셋째, 자료를 함께 읽는다. 통계, 정책자료, 뉴스, 플랫폼 이용약관을 비교하고 정보의 출처와 이해관계를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선배시민의 사회적 경험과 청소년의 디지털 경험이 서로를 보완한다.

 

넷째, 대안을 생산한다. 접근성 지도, 키오스크 평가표, 디지털 권리 안내서, 카드뉴스, 영상, 주민제안서 등을 공동으로 만든다. 디지털 정보를 소비하는 데서 정보와 대안을 생산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공적 행동으로 연결한다. 조사 결과를 지방의회, 주민참여예산, 학교·복지관 운영위원회, 기업과 공공기관에 제출하고 개선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바로 이 단계에서 문해는 세계를 읽는 능력에서 세계를 다시 쓰는 시민적 실천으로 전환된다.




디지털 포용의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디지털 배제의 책임을 고령자나 청소년, 자원봉사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디지털 문해교육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은 접근 가능한 기기 설계, 쉬운 언어, 충분한 이용시간, 개인정보 최소 수집, 대면·전화·서면 방식의 유지, 장애와 연령을 고려한 보편적 설계를 보장해야 한다. 시민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기회뿐 아니라, 부당하고 배제적인 디지털 전환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와 비디지털 방식을 선택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선배시민 디지털 문해운동의 목표는 모든 노인을 능숙한 스마트폰 이용자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기술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누구도 기본권과 공공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맺음말: 세대가 함께 읽고 다시 쓰는 민주주의


프레이리의 문해론에서 읽기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시민의 실천이다. 이 관점에서 선배시민운동은 노년을 복지의 대상에서 권리와 참여의 주체로 다시 쓰는 운동이다. 나눔샘은 청소년을 미래의 시민이 아니라 현재의 후배시민으로 세우고, 자선의 언어를 권리와 연대의 언어로 전환한다. 시민 디지털 문해운동은 이 두 세대가 함께 알고리즘과 플랫폼, 디지털 행정과 정보 불평등을 읽도록 한다.

 

이 세 운동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형식이 학습동아리 민주주의다. 선배시민의 경험과 청소년의 디지털 감각이 동등하게 만나고, 학습이 공동의 조사와 토론을 거쳐 공적 행동으로 이어질 때 디지털 교육은 단순한 기기 사용교육을 넘어선다.

 

선배시민과 후배시민은 서로에게 세계를 읽는 법을 가르치는 공동의 시민이다. 이들이 함께 디지털 세계의 불평등을 읽고, 배제의 구조를 말하며, 대안을 만들고 실천할 때 문해교육은 민주주의가 된다. 그리고 그때 선배시민운동은 노인을 위한 운동을 넘어 모든 세대가 시민으로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드는 운동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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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시민뉴스(부산) = 김경식 기자(bioman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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